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 애니메이션/역사 (문단 편집) === 토에이의 경영 개혁 === 한편 토에이도 1963년 [[츠키오카 사다오]]가 주도한 《[[늑대소년 켄]]》([[https://www.youtube.com/watch?v=oLUJ0OgrpQI|오프닝]])으로 [[TVA]]를 만들기 시작했다. 하지만 본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회사였기에 TV용 '테레비 망가'에 어린이 손님을 빼앗기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. 그래서 디즈니 영화같은 A급 대작 노선과 《[[사이보그 009]]》 같은 인기만화 원작에 제작비를 줄인 B급 리미티드 노선을 병행하기로 했는데, 어린 관객들은 자신들이 즐겨 읽는 만화 원작의 B급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 게다가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한 《[[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]]》(1968)은 흥행에서 실패하고 토에이 동화는 한번 망할 뻔할 정도로 흔들렸다. 같은 시기 내수 영화시장의 사양화로 모기업 토에이도 경영이 악화돼 한시라도 빨리 암을 도려내야 했는데, 적자 경영으로 불량자산이 돼버린 토에이 동화와 프로야구단 [[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|토에이 플라이어스]]가 그 타겟이었다. 이 즈음 동양 최대의 노사분규라고 불린 대규모 노동쟁의 운동이 발생했고,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믿고 그 동안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진을 밀어주던 토에이 동화 제1대 사장 [[오카와 히로시]]가 1971년에 병으로 사망하고, 그 뒤를 이어서 새로 취임한 제2대 사장 토이시 슌이치는 제작 편수를 줄이고, 회사를 록아웃하고 반발하는 종업원 320명 중 절반을 ~~반강제~~ 희망퇴직시키는 대대적인 인력 정리를 감행했다.[* 노조운동에 적극적이었던 [[타카하타 이사오]], [[코타베 요이치]], [[미야자키 하야오]]는 1971년 [[신에이 동화|A 프로덕션]]으로 쫒겨나듯이 이적한다.] 극장용 영화가 제작만 하면 적자인 것도 문제였지만, 정직원 애니메이터의 높아진 임금도 골치덩이였던 것이다. 그리고 제3대 사장 이마다 치아키는 1974년에 토에이 동화의 방향성을 제작비를 줄인 B급 극장용 영화와 인기 만화 원작의 [[TVA]]화,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둔 작품 선정으로 정한다. 캐릭터 상품 판매와 상품화 저작권 판권 영업, 작품의 해외 방영권 수출에도 눈을 돌려, 《[[마징가 Z]]》, 《[[UFO로보 그렌다이저]]》([[프랑스]]에서 인기), 《[[강철 지그]]》([[이탈리아]]에서 인기), 《[[초전자머신 볼테스 V]]》([[필리핀]]에서 인기) 등이 해외에 소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. 이리하여 토에이는 약 3억 엔의 누적 적자를 해소했다. 같은 시기에 컴퓨터 전문가 요시무라 지로를 불러들여 애니제작의 전산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